가락시장, 정겨운 세계야채백화점 기복유통이 있다

▲기복유통(주) 구자분 대표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을 의전하는 어느 한 기획사에게 떨어진 지령 하나. “아티스트 A는 반드시 B국가에서 공수한 꽃으로 된 허브 C의 포푸리를 반드시 티 테이블에 세팅해야 한다. 또한 공산품 티백이 아닌 4종류의 민트를 모두 원할 때마다 차로 마실 수 있어야 한다.

A는 이미 중국에서 청경채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드시 청경채가 아닌 다청채, 다홍채를 넣은 샐러드를 런치로 제공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요구를 받은 기획사 매니저는 발을 동동 구르다 가락시장을 찾았다. 운 좋게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기복유통. 꽃과 야채, 허브 등 3,000여 종이 구비된 유통계 마당발이자 최고의 영업 전문가인 구자분 대표가 진두지휘하는 업체다.

“그 어떤 특수야채든 국내에서 우리가 못구하는 야채는 국내에 없다고 보면 된다. 이름만 알려 주면 공수할 수 있는 모든 종류를 다 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구 대표는 가락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처음에는 남들이 많이 먹는 배추와 무를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태국에 가게 됐는데, 치앙마이 시장 같은 곳에서는 꽃을 음식 위에 장식해서 아름다웠다. 그래서 꽃 유통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난, 장미, 소국, 카네이션 등 취급하는 종류가 다양해졌다.”

구 대표는 꽃을 다루면서 그 당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웰빙 열풍에 따라 쌈야채를 시작했다. 구 대표의 매장은 점점 인기를 얻었고, 이후 해외 요리에 들어가거나 개량이 되어 일반 상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특수야채를 시작하게 됐다.

“쌈밥집들이 이제는 제대로 된 외식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단순히 종류만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라 먹을 때 야채들의 색과 맛, 식사와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소쿠리에 쌈을 놓는 방식, 그리고 밑반찬과 함께 나가는 방식 등을 다 가르쳐 주었고 반응은 더 좋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복유통의 품목은 많아졌고 요식업과 서비스업의 전문가들이 앞 다투어 기복유통을 찾았다. 구 대표의 성공에는 지난 30여 년 간 쉬는 시간도 아껴가며 일해 온 영업사원 마인드와, 유통 전문가 겸 대표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꽃들 간의 조화로움과 쓰임새, 야채의 성질과 부위별 맛, 그리고 명칭과 각 국가별로 달리 불리는 이름까지 암기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다.

구 대표는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로 중국과 동남아 해외 바이어들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공급받아 고객에게 전하고 있다.

전통시장의 현장 유통 전문가들 의견 수렴한 정책이 절실해

중국, 태국, 미얀마 등 재래시장에서 수많은 야채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는 구 대표는 자신이 유통하는 모든 식재료 야채들을 시식해 본다.

“공부하듯이 생채소대로 곁들여 먹거나, 즙을 내어 먹다 보면 그 효능을 알고 고객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 야채에도 허브에도 각자의 효능이 있다. 바질의 경우는 크기에 따라 용도와 맛이 다르다.”

새로운 요식업종이 뜨면 어떤 야채가 들어가는지 관심을 갖고, 외국 시장에서 얻은 정보로 고객에게 추천한 특수야채들이 거꾸로 매체에서 화제를 얻어 재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동남아의 식재료로 쓰이는 야채들, 야콘은 기복유통의 푸른 간판에도 당당히 적혀 있는 인기 품목이다.

초속잠이라는 야채도, 진귀한 새싹 인삼도 국내 최초로 기복유통에서 공급한 품목이다. 지금은 쌈채소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미운 오리 신세였던 치커리와 청경채류는 구 대표의 적극적인 홍보로 쌈장과 고기류에 곁들이면 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고객들이 즐겨 찾게 되었다.

또한 검정이나 투명 비닐봉지에 담으면 야채에 습기가 차고 말단 부분이 젖어 시드는 것을 발견한 구 대표는 봉투를 바꾸어 습기 차는 현상을 없앴다.

그런 아이디어 연구 덕분에 손맛을 아는 가락시장의 고객들도 기복유통이 오픈하기도 전에 줄을 서서 구매해 간다. 가락시장 내에는 구자분 대표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9개 매장이 있다.

“분점이라기보다는 똑같이 경영되는 기복유통의 9개 복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살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꽃을 다루면서 직원을 3-4명씩 두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왕도는 그저 부지런함과 노력뿐이다.”

격언처럼 삼은 다짐대로 구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야채를 들일 때는 직접 가서 보고, 가격을 협상하고 상태를 보고 결정해서 직접 들여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꽃, 허브, 특수야채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지금은 산야초, 약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장래에는 대전과 세종시에 서울과 같은 전문성을 갖춘 기복유통을 만들겠다는 뜻을 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그래도 구 대표가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있다.

구 대표의 남편은 가락시장의 운영위원으로 일하면서 매장 운영자들이 느끼는 현대화 사업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느끼고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가락시장의 현대화가 결정되었다. 그래서 3년 후면 정비된 백화점식 매장으로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회 시장이 그렇듯 야채 시장은 사방이 막힌 매장과 정가제의 삭막함이 어울리지 않는다. 최상의 상태로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해 고객에게 공급해야 한다. 사비를 털어 세련되게 바꿀 수도 있으니 현재의 운영 방침대로 경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비자의 만족과 전문성을 위해 오늘도 달리는 구 대표의 뜻이 모쪼록 재래시장 운영정책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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