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피자가 있는 곳

이탈리아 장인이 설치한 가마에 불씨가 꺼진 날이 없다. 365일 직원들은 가마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참나무를 집어넣는다. 이들이 불을 꺼뜨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정직한 피자를 내놓기 위해서다. 천연 효모로 발효된 도우가 480도가 넘는 고온에 부풀어 오르고, 이탈리아산 그라나롤오 모짜렐라 치즈가 도우를 촉촉이 적시는 시간은 고작 1~2분. 하지만 나폴리 정통 피자를 한국에서 만드는 데 들어가는 공은 수량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피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세안홀딩스주식회사 박석훈 회장의 신념을 지켜내고자 오늘도 로쏘비앙코(Rosso Bianco)직원들이 화덕 가마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다.

▲ 이탈리아산 타일로 로쏘 비앙코(Rosso Bianco)라고 표기했다. 화산재 벽돌, 소금, 석판 등 가마를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 가운데 한국산은 없다. 모든 재료를 현지에서 들여와 화덕 가마 장인인 알리아루로 프란체스코(오른쪽 두 번째)와 알리아루로 에르네스또(왼쪽 두 번째), 토스카노 까르미네(오른쪽 끝)가 2주간에 걸쳐 완공했다. 가마 앞에서 기념 핸드프린팅을 들고
▲ 로쏘비앙코 입구와 핸드프린팅(사진제공:로쏘비앙코)

진짜 화덕 가마, 피자맛을 50%에서 100%로 끌어올려

가마솥에 밥을 하면 밥맛이 꿀맛이다. 한국인에게 밥솥은 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첨단 기술이 밥솥을 아궁이에서 주방으로 옮겼지만 맛과 정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각종 화덕 가마가 피자 전문점에 설치되고 있지만 피자 맛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국민들 입맛이 인스턴트 피자에 길들여진다고 해도 ‘정통 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은 나폴리 핏자리아(pizzeria)를 향하고 있다.

▲오랜 시간 고온 상태에 있던 가마가 열을 잃었다고 바로 재가열하면 도자기처럼 깨질 수 있다. 가마의 복사열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갈참나무, 졸참나무를 말리는 창고
▲가마 속에서 불타는 참나무

“알리아루로(Agliarulo) 씨를 나폴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화덕 가마를 작품이라고 했다. ‘내 작품을 유지할 수 있는 곳에만 만들어준다’는 말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전 세계에 화덕 가마를 설치하는 알리아루로 가의 노력은 대단하다. 나폴리 3대 전통 피자 가마 장인으로 불리는 알리아루로 씨는 ‘다미켈레’, ‘소르빌로’, ‘디마떼오’ 장작 가마를 선조 때부터 만들어왔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가마를 사겠다고 온 것은 그들에게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마를 만들어주는 장인 정신을 지키고 있었기에 박석훈 회장과 일행은 알리아루로 프란체스코의 모든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2월, 나폴리 정통 피자를 만들 수 있는 가마가 서울 신문로에 완공된 것에 로쏘비앙코 전 직원이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로쏘비앙코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세안홀딩스주식회사 외식사업부 김호 이사는 가마를 들여온 일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로쏘비앙코가 ‘핏자리아’라는 말을 써도 무방할 만큼 이곳 피자는 본토 맛을 냈고, 국내 유일의 최고급 나폴리 피자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는 가마뿐만 아니라 피자에 들어가는 식자재도 이탈리아산을 사용하고, 피자를 만드는 방식과 가마를 유지하는 방법도 이탈리아식을 고집해서다.

“확실히 피자맛을 내는 데 가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50%의 피자맛을 100%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알리아루로 가문의 화덕 가마가 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재료가 정직해야 본래 맛이 나는 법

피자맛 배우러 일본행,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아

로쏘비앙코에서 판매하는 피자에는 공통점이 있다. 천연 효모로 숙성한 도우와 검은 물소 젖으로 만든 그라나롤로(Granarolo)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가 100% 들어간다는 점이다. 밀가루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알려졌지만 로쏘비앙코의 도우는 소화에 도움을 주는 천연 효모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피자에 사용하는 그라나롤로 모짜렐라 치즈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최고급 모짜렐라 치즈로 시중 피자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기름진 가공 치즈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치즈를 생산하는 그라나롤로 그룹은 이탈리아 중북부지방 에밀리아로마냐의 주도인 볼로냐에 있는 세계적인 낙농업 협동조합 기업이기도 하다.

▲검은 물소 젖으로 만든 그라나롤로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 한 통이 피자 한 판에 모두 들어간다고 한다(왼쪽), 냉장고에 숙성되는 도우와 밑에 있는 효모(오른쪽)

로쏘비앙코의 피자는 가마, 도우, 치즈 때문에 그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480도가 넘는 가마에 천연 효모로 숙성된 도우가 구워지기 때문에 마치 빵처럼 부풀어 올라 피자 모양이 울퉁불퉁 불규칙적이고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도 생긴다. 치즈에는 수분도 많아 촉촉한 도우를 먹는 식감이 다른 피자와는 크게 다르다. 인스턴트 피자만 먹던 사람들은 이런 로쏘비앙코의 피자를 보면 매우 낯설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마솥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나폴리 피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을 것이다. 이에 강신유 매니저는 “어떤 기자는 나폴리 피자에 그을린 자국이 있다고 먹지 못한다면 우리의 누룽지도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폴리 피자가 어떻게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나면 로쏘비앙코 피자를 먹는 일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덕에서 꺼내는 피자(왼쪽), 마르게리따 피자(오른쪽) 사진제공:로쏘비앙코

이들은 정통 피자맛을 내기 위해 일본 도쿄에 있는 벨라 나폴리(Pizzeria Bella Napoli)의 요리사 이케다 씨에게 연수를 받았다. 이케다 씨도 일본 내에서는 이름 있는 이탈리아 정통 요리사로 알려져 있고, 알리아루로 가 정통 화덕 가마를 사용한다. 이처럼 로쏘비앙코 직원들이 피자에 들이는 노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 이탈리아와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위생관리(서울시 음식점 위생등급 AAA, 현재)까지 더해 단연 한국에서 최고 피자를 만드는 핏자리아라고 부를 수 있는 곳. 로쏘비앙코는 앞으로 피자 마니아와 단골 고객의 사랑을 밑거름으로 대중들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 새로운 메뉴 개발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 보여

마니아 핏자리아에서 대중 핏자리아로 거듭난다

▲로쏘비앙코 전경(사진제공:로쏘비앙코)

김호 이사는 “우리는 정통성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나폴리 피자는 로쏘비앙코’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곳에서는 맛있는 피자, 행복한 피자를 맛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겠다”고 밝혔다. 로쏘비앙코는 피자 이외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서 갖출 수 있는 다양한 음식과 와인을 준비하고 있다.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돼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도 알려졌다. 로쏘비앙코는 광화문 사거리 에스타워 지하 1층에 있고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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