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으로 세상을 읽다

얼마 전 연재가 마감된 웹툰 ‘미생’은 사회초년병과 직장생활에 대한 진솔한 묘사로 큰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장그래’는 한국기원의 연구생 출신으로 프로승격에 실패하고 갑자기 사회에 던져진 인물이다. 이 남자가 회사에 다니면서 적응해가는 과정을 바둑에 비유하여 실감나게 그려냈다. 한 회를 바둑의 1수로 표현하여 총 145수로 완결된 이 작품은 바둑과 인생의 접합점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았다. 과연 그럴까. 바둑은 정말 인생의 축소판일까. 바둑전도사를 자처하는 권갑용 원장은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KIBA국제바둑학교 권갑용 원장

권 원장은 75년 프로로 입단했다. 현재 바둑 8단인 그는 삼십여 년 동안 전문 바둑 교육인으로 살아왔다. 83년 국내 최초로 바둑교실을, 87년에는 프로 지망생을 위한 바둑도장을 열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지난해에는 KIBA국제바둑학교로 개칭하여 남다른 도전정신을 보였다. 평생 그를 사로잡아 놔주지 않는 바둑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간단하게는 땅따먹기죠. 전쟁이고, 지혜를 겨루는 싸움입니다. 흥망성쇠, 죽고 사는 문제가 이 안에 다 들어있어요. 자꾸 두다보면 점차 고수가 되면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자연히 세상에 인재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죠. 온 세상의 지혜가 바둑 안에 들어있어요. 바둑은 끝이 없습니다. 무한대죠.” 

삼십년 동안 무수한 인재가 그를 거쳐 갔다.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스타 기사들이 모두 그의 제자였다. 그의 도장은 프로 기사의 80%의 등용문이었다. 인재를 기르는 낙으로 살았다. 일류 토너먼트 프로들을 수없이 길렀다. 그러나 늘 가슴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다. 

“프로기사가 안 된 제자들을 보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인생이 끝난 게 아닌데. 바둑은 그런 게 아닌데.” 이세돌은 단 한 명이지만 수많은 ‘장그래’의 축 처진 어깨가 권 원장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프로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둑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인재를 양성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죠.” 이에 바둑의 보급에 힘쓰기 위해 아카데미로 개칭하고 영어, 중국어 교육을 병행하는 국제학교를 창설했다.

현재 KIBA국제바둑학교의 교생은 총 150여명에 달한다. 5층에 프로를 위한 반도 있지만 4층에는 6세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연령의 꿈나무 80여명이 바둑을 배우고 있다. 요즘 ADHD(주의력 결핍 증후군)로 진단받는 어린이들이 해가 다르게 증가 추세에 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콘텐츠의 무분별한 시청,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남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놀랍게도 KIBA국제바둑학교의 교생들은 한자리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바둑에 몰두한다. 겨우 일곱 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집중력이다. 몰입교육이 이를 가능케 한다. 바둑을 통해 길러진 집중력이 영어나 중국어 학습에도 영향을 미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권 원장은 한때 일본으로부터 바둑의 종주권을 쟁취했던 한국의 바둑이 중국에 밀려 쇠락해가는 이유가 스마트폰, 컴퓨터에 밀려 어린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그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있다. “바둑의 생명력은 길어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죠. 바둑 하는 사람 중에 치매환자는 없습니다. 이 좋은 바둑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바둑전도사 권 원장의 행보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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