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향한 갑질 사라지길… ‘동행계약서'”

“2014년 11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경비원 자살 사건을 접하고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이 뿐 아니라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갑질’ 문제가 많아요. 동행(同幸)이 확산돼 더 이상 ‘갑을관계’라는 말이 쓰이지 않게 되면 좋겠어요.”

장석춘(사진·64) 행복코리아 대표는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들의 처우 개선과 인식변화를 위해 ‘동행 계약서’를 처음 만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경비원과 마찰이 많은 성북구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직을 맡고 있다.

▲장석춘(왼쪽에서 네번째) 행복코리아 대표는 성북구의 한 단지 입주자대표직을 맡은 뒤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들의 처우 개선과 인식변화를 위해 ‘동행 계약서’를 처음 만들었다. 사진은 한 달에 한 번씩 실시되는 포상을 수상한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브릿지경제)

농협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은퇴한 그는 이후 백세시대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행복코리아 대표로 있다 우연히 입주자대표 회장자리에 오르게 됐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평소 단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관심도 없었어요. 그 흔한 통장 한번 안 해보고 살아왔으니까요. 강의가 없어서 쉬는 날 산책하던 중 아파트 임시 설치물을 놓고 구청 직원과 아파트 입주자 간에 실랑이가 오가는 것을 보게됐어요. 제가 법대를 나와서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다가갔죠. 제가 도와 일이 잘 해결되고 나니 이웃 주민들이 입주자대표 선거에 나가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군요. 얼떨결에 나가 당선이 되어 4년 동안 이 일을 하게됐죠.”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된 그는 경비원, 미화원 분들의 근무환경을 먼저 살피게 됐다고 말했다.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사는 그와 비슷한 연배였기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

“경비원이나 미화원 여러분들은 아파트 관리에 있어서 꼭 필요하신 분들인데 그 고마움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 100세시대이다 보니 인생 이모작으로 경비원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제 70대는 중년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특히 제 연배의 분들이 주로 경비원, 미화원으로 근무하시다 보니 남의 일 같지 않고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돕고 싶었죠.”

그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에 앞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작은 것부터 바꿔보기로 결정했다.

“고민하던 중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들도 우리의 가족입니다’ 라는 문구를 담은 포스터를 부착하고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계몽운동을 펼쳤죠. 또 입주자들이 돈을 걷어 명절에 경비원, 미화원 분들에게 명절에 소소하게 떡값도 챙겨드리게 됐어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돈을 걷으니 아파트 주민들도 알게 모르게 주인의식을 갖게되더라고요.”

그는 아파트 주민들의 작은 변화에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경비원들이 쓰는 계약서에 갑을이라고 표기된 것을 우연히 보게됐고 그 분들도 아파트에 없어서는 안되는 동반자라는 생각에 갑을을 동행으로 바꿔보기로 결정한 것. 이렇게 해서 만들게 된 것이 ‘동행 계약서’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후 아파트에 관련된 모든 계약서에 ‘갑을’ 대신 ‘동행’을 쓰게됐다.

그는 작은 변화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컸다고 말한다.

“동행으로 바꾼 후 상하 관계가 아닌 동반자라는 인식이 심어지다보니 조금 까다로운 일이어도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죠. 경비원 분들도 주민들의 어려움을 더 살펴주려고 노력하시고 웃으면서 일하시는 걸 종종 보게 되요. 그럴 때면 흐뭇하죠.”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욱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동행과 같은 프로젝트가 더욱 많이 생겨나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석춘 행복코리아 대표. (사진=브릿지경제)

◇ “평범한 할아버지도 하잖아요?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달 29일이면 지난 4년 동안 열정적으로 일했던 입주자대표 회장직을 내려놓게 되는 그는 시원섭섭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4년 동안 아파트 일을 하면서 정말 보람차고 즐거웠어요. 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저보다 능력있는 사람이 제 자리를 대신해 좋은 문화를 만들어 널리 퍼트려 주면 좋겠어요. 이제 저는 손자의 손을 붙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가야죠.”

그는 앞으로 입주자대표 회장직이 끝나고 나면 행복코리아 대표로서 지금까지 펼쳐왔던 강의활동을 더 바쁘게 이어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근 강서구 등 서울시내 다른 지자체에서도 성북구의 ‘동행 계약서’를 벤치마킹하는 등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으로 동행 프로젝트가 더 널리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갑을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변화가 가져올 큰 변화를 무시할 수 없어요. 두고 보세요.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갑을관계’라는 말이 없어질 날이 곧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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