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후위기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사진출처=픽사베이

[이뉴스코리아 박은혜 칼럼니스트]

어쩌면 기후위기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논의에서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있는 주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 줄 화려한 기술의 발전과 비교하면 기후위기는 낙관적인 분위기를 망칠 것만 같은 훼방꾼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기후위기는 과학계의 정설이 아니며 우리는 얼마든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그럴까?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하여
벌써 10년도 더 넘은 2007년에 미국의 저명한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즈는 “과학적 합의와 기후변화”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의 핵심 주장이자 전제는 기후변화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인간의 활동에 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저자의 독창적인 결론이 아니라, 이미 1980년대 이후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 이의가 없는 것으로 합의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자 사회의 합의가 외부 대중들에게 상당한 정도로 굴절되어 나타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오레스케즈는 기후변화의 문제에 관하여 대중의 인식이 혼동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치 생물학에서 진화론이 과학자 사회에서 사실상 정설로 수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과학자 사회가 진화론과 유신론적 가설들 사이의 대립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오해되듯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과학자 사회에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는 듯 비쳐진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 합의는 얼마든지 그릇된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관한 문제는,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대부분의 과학 단체들이 동의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과학자 사회의 합의 사항들 즉 전문적으로 출판된 논문들에 접근하는 일은 평범한 대중들에게는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저자는 1993년~2003년에 걸쳐 기후변화와 관련된 주제로 출판된 논문들의 키워드를 일별하면서, 기후변화의 실제로 존재한다는 합의사항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문이 놀랍게도 단 한 편도 없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이미 답이 내려진 문제에 그다지 몰두하지 않는 까닭에, 대부분은 기후변화가 가져다주는 효과에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즉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간이라는 주장은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 결코 논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는 과학자들의 연구
그렇다면 왜 대중들은 과학자 사회 내부에 불일치가 있다는 인상을 받을까? 오레스키즈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원인은 과학자 사회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주장을 바깥에 전달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지식을 생산하는 훈련에는 능숙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지식을 전달하거나 방어하는 훈련에는 미숙하다. 지식의 유통이라는 과제를 어려워하며 지식의 생산만을 실질적인 업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에 강조를 두는 일련의 대중친화적인 과학자들은 과학자 사회 내부로부터 대중화 내지는 정치화라는 수식어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대중이 과학자들의 합의를 오해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실질적인 과학자 집단이 아닌,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춘 기관들에 의해 비주류적 주장들이 전달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주장들 가운데는 기후과학에 관하여는 잘 알지 못하는 저명한 과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주장, 즉 기후변화의 실제성을 부인하는 주장의 핵심은 기후변화가 자연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연구가 공격을 당하기만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과학적인 것으로서 검증을 받아 논문으로 출판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책, 팜플렛, 인터넷이 이들의 주장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과학자들은 불성실하고, 새로운 주장을 내어놓지 않으며, 그렇다고 과학적 합의를 대놓고 부인하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행동을 제시하고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개입
많은 경우에 기후변화의 실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후과학자들이 정당한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과학적 정당성을 보증해주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과학철학의 역사에서 제시되었던 여러 가지 과학적 방법들, 가령 연역, 귀납, 반증주의는 기후과학의 영역에서 잘 들어맞는다. 분명히 산업혁명 이후 150년 동안 귀납적으로 축적된 경험적 사례는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결론을 제시해준다. 또한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지구의 온도를 높인다는 추론이나, 극지방의 기온 상승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추론처럼, 연역적으로 먼저 제시되고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사례들도 있다. 더불어 포퍼의 반증주의에 기반하여, 기후과학의 모델은 미래의 예측이 아닌 과거의 재현 여부를 통해 정당성을 검증받는다. 기후모델이 어떠한 변수로 누구에 의해 돌아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양한 편차를 나타낼 수 있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다. 다만 남은 문제는 그것이 어떤 속도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느냐일 따름이다.

이 모든 결론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이이므로 모조리 틀릴 수도 있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만약 실수가 발견되어 수정된다 하더라도 시나리오가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반대자들의 노력이 실패할수록 지구온난화의 실재성은 더 강력한 근거를 갖는다. 일련의 데이터들이 서로 간에 부합하여 하나의 결론으로 이끄는 증거들의 일치는 기후과학에서도 당연히 나타난다. 근거를 다루는 방식에서 과학자들은 마치 변호사들처럼 행동할 수 있다. 또 다른 일부의 주장으로, 과학의 목적은 증명이 아니라 설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당한 근거를 통해 증명되지 않은 설명은 결코 최선일 수 없다. 그리고 오레스케즈의 인상적인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정말로 피해야 할 것은 인간의 행동의 회피하게 만드는 설명이다. 지구온난화가 자연적 순환에 불과하다면 여기에 인간의 역할은 어디 있겠는가.

결국 갈라설 수 없는 지구온난화와 인간
결론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은 인간이 지구의 대리자임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구의 거대한 자연적 변화 과정에 비해 인간의 활동은 극히 보잘 것 없다는 과거의 인식이 있어왔을지라도, 중요한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인간은 기후를 변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합의는 부정될 수 없다. 이러한 결론은 1983년 기후변화 논쟁의 출발점으로 등장한 니렌버그 보고서에서 잘 나타났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과학적 합의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이다. 다만 영리하게도, 니렌버그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자연적 문제 그 자체가 아닌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 능력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들이 찬미하는 것은 인간 능력의 위대함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과학적인 문제를 사회과학적 문제로 재배열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미 존재하는 과학적 지식을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재구성하게 되면, 이로써 기후변화의 문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도 괜찮은 문제로 둔갑하고 만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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