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차산업혁명이 불러온 통번역시장의 변화, 차별은 줄이되 변별력은 높이다

박은혜 이뉴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이뉴스코리아 박은혜 칼럼니스트]

4차산업혁명 이전, 보이지 않는 소통의 차별이 존재했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 대신들은 성종의 할머니 정희왕후에게 수렴청정을 권하지만 정희왕후는 사양한다. “한문을 잘 아는 인수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낫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대신들의 간곡한 청에 수렴청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으나, ‘한글은 알지만 한문을 모르는’ 정희왕후는 ‘한글도 알고 한문도 아는’ 인수대비의 도움을 받아가며 정사를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야심가 인수대비가 어디 도움을 주는 정도에 그쳤을까.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는 한문들을 보며 ‘어느 정도의 개입’이 아닌 ‘전적인 개입’을 했다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렇다고 정희왕후를 향해 무능하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시는 공주에게도 언문 이상은 가르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으니, 인수대비의 사례가 독특했던 것일 뿐 정희왕후를 비난할 수는 없다. 정희왕후는 게을러서 한문을 몰랐던 게 아니라, 배울 기회가 없어 몰랐던 것이다.

이 역사 속의 상황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 영어교육을 충분히 받아온 젊은 세대와는 달리, ‘배우고 싶어도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세대들이 사회 내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게을러서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어를 못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만 같았던’ 그들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영어와 종종 마주치곤 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영문과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는가 하면, 즐거운 여행지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영어를 알아들어야 하거나 영문을 해석해야 하는 일들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그 세대들은 남모를 고충을 겪고 곤혹을 치러야 했다. 기본적인 소통과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치 않은 무시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경험하기까지 한다. 급기야 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기도 한다. 가령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나이 많은 상사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양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마치 정희왕후가 그랬던 것처럼. 꼭 전문적인 영역에서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여행을 가서 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이 역시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은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를 둔 부모세대가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손주와 ‘대화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 역시 안타까운 현실임에 틀림없다.

4차산업혁명의 도래, 보이지 않는 소통의 차별을 제거해 나가다

다행히 4차산업혁명의 도래로 보이지 않는 차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편리해지고 보다 확실해진 통역˙번역 도구가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통역과 번역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2015년 정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번역기는 번역 상 오류를 드러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정확한 번역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정돈된 문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번역물을 보고 ‘이거 번역기 돌린 거죠?’라는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나올 정도로 뭔가 엉성했다. 그러나 인공지능 번역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기계적인 번역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번역기는 자체적으로 문장 전체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고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작성자의 의도까지 이해하여 번역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기계 번역이지만 기계적인 번역은 하지 않는, 괄목할만한 번역기의 발전을 이뤄낸 것이다.

통역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었을 때 즉석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영어사전을 찾아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현재 스마트폰은 외국어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지원해 준다. 말을 하면 동시에 통역하여 대신 말해주는 통역 앱은 물론, 외국인과 대화를 할 때 말만 하면 그대로 번역된 메시지가 전송되는 시스템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한번에 100개 이상의 언어로 실시간 번역이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만큼 해외에 나갔을 때, 혹은 국내에서 외국인과 소통을 해야 할 때, 기본적인 소통을 못해 좌절할 일은 더 이상 없다.

결국 영어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세대가 더 이상 영어 때문에 차별 받을 일은 없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는 것까지는 못 바라겠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소통과 해석을 못해 무시를 당하거나 피해를 입을 일은 없다. 4차산업혁명이 그 부분에 있어 차별을 해소해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변별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차별이 사라지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조선시대 상황에서 한문을 자동적으로 번역해 주는 기계가 등장했다고 해 보자. 정희왕후의 입장에서는 감사할 일이겠지만 남 몰래 틈틈이 한문을 공부해 온 인수대비 입장에서는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영어공부에 매진해 온 사람은 이 변화의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은 차별을 제거하되 변별력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및 기본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할지언정 그 이상의 수준을 요구하는 영역에서는 자리를 남겨둔다. 항간에서는 오히려 기계적인 통번역 시스템으로 인해 전문 통역・번역가의 위치가 더욱 곤고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기계도 못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차원에서다.

실제로 기본적인 소통을 하는 것과 전문적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예를 들어,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해서 무조건 강연자가 될 수 있는가? ‘소통 차원에서의 말을 잘 하는 것’과 ‘언변이 뛰어난 것’은 분명 다른 개념이다. 강연의 기회를 얻을 정도로 언변에 능하려면 관련 전문 지식이 내재되어 있어야 하고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 역시 뛰어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영어를 쉽게 알아듣고 쉽게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통역가의 자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기계의 힘을 빌려 영어를 잘 할 줄 안다고 해도, 기계를 소지하지 않은 채로 전문적인 분야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를 쓸 줄 안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기본적인 영어 해석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누구나 수준급의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의 힘으로 문장의 기본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보편화된다고 해서 영문을 문학적으로, 혹은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일이 모두에게 허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영문 메일 혹은 영문으로 된 간단한 문서나 설명서를 읽을 때는 4차산업혁명의 도움으로 기본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문장으로 번역을 하여 도서나 논문 등으로 출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도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물론 기본적인 번역을 지원하던 번역가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부분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을 통해 외국어가 보다 보편화되어가는 만큼 그들의 위치는 또 다른 차원에서 확장될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가령 번역가 대신 포스트 에디터(기계로 작성된 번역문을 다시 고쳐 쓰는 역할을 하는 사람)로의 변신이 요구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수준 높은 번역기의 등장으로 번역가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 거라 예측하기도 하지만, 현재까지는 포스트 에디터의 기능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인간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인식되는 4차산업혁명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통번역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이 어느 수준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흐름을 본다면 4차산업혁명이 ‘국제화시대에 언어로 차별받지 않을 기회’를 제공해나갈 것만은 분명하다. 동시에 4차산업혁명은 누구보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 온 이들의 노력을 빛내주는 일 역시 도외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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