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누드화가 왜 풍자예술인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조금 깁니다)

이정토에 이번 문제에 대해 3가지 항목으로 글을 썼는데, 

자게에는 첫 번째 항목만 올려보겠습니다. 

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박근혜를 풍자하는데 쓰여졌는지,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1. 누드화 선택의 적정성

위의 작품이 논란이 된 누드화로 작품명 “더러운 잠” 입니다.

아래는 그 작품의 원작인 “올랭피아” 입니다.

도대체 박근혜를 비판하는데 왜 뜬금없이 누드화를 썼냐 ? 부적절하다! 라고 합니다만,

원작인 올랭피아가 도대체 뭔가를 살펴보면,

올랭피아는 미술사학자 클락 (T.J. Clark) 교수의 말대로 동시대 여성이었던 빅토린느 뫼랑(Victorine Meurent)이라는 실제 여성의 모습이었고, 직업은 고급창녀(courtesan)였으며, 검은 고양이는 바로 부재하는 남성 고객의 이미지로 읽혀진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5370

위와 같습니다.

올랭피아는 “고급창녀” 를 그린 그림이었던거죠.

자, 그럼 이 ‘에두아르 마네’ 가 그린 “올랭피아” 라는 작품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까요 ?

잘 정리된 글의 링크 : http://egloos.zum.com/rahmses/v/1303348

하지만 다 읽기는 길다보니 간략히 요약을 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과거 19세기 유럽에서 누드화는 유행했었고 요정, 비너스나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화풍은 아래와 같습니다.

04.jpg

알렉산드로 카바넬 – “비너스의 탄생”

나폴레옹 3세가 구입하여 소장한 작품이죠..음.

위의 올랭피아 작품과는 좀 화풍이 다르죠 ?

비너스의 탄생은 우리가 흔히 보는 신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고

위의 올랭피아는 신성한 느낌은 커녕 현실적인 접대부 같은 모습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예술계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았습니다.

왜?

누드화로써의 퇴폐성과 관음성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은 화풍이 다르다지만 같은 누드화를 그려도 나폴레옹 3세가 구매해갈만큼 흥했는데

왜 마네의 올랭피아는 퇴폐성과 관음성의 비난을 받았던걸까요?

바로 당시의 신화적 인물을 그려낸 그림의 모델은 대부분 매춘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앞에서는 번듯한 예술을 칭하고 있었으나 뒤로는 매춘여성들과 어울리는 이중생활이 만연해있었죠.

그런데 감히, 그 예술의 치부인 매춘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누드화를 그렸던 것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죠.

아래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올랭피아는 바로 이런 매춘여성을 그린 작품이다. 팔찌와 목걸이 등은 그들이 예속된 존재임을 나타내고 도발적인 시선은 매춘부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흔히 비너스 곁에 후광처럼 자리하던 아기천사 대신 여기선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암고양이는 프랑스어로 여성 성기의 동음이의어이다. 흑인 가정부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세상의 이목을 피해 그녀의 고객이 보낸 꽃이다. 그렇기에 올랭피아의 관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미래의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기만적인 프랑스 남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마네는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

마네가 그리고 싶어했던 것은 신화적 이미지들이 아닌 제 3공화정이 바꿔놓은 파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습니다.

이정도쯤 보면 왜 박근혜가 올랭피아의 자리에 들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왜 작품의 제목이 “더러운 밤” 일까요.

세월호 참사 당시 호텔에서 정윤회와 밀회를 했다는 의혹,

독재정권 시절 최태민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의혹.

그것도 무려 대통령의 영애이자, 지금은 대통령으로 있는 박근혜의 행동..

“고급창녀” 가 그려진 올랭피아에 박근혜가 빗대어 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죠.

또한,

시대상황으로 봤을 때도 현실을 외면하고 겉치레만 번드르르한 예술을 추구하던 19세기 프랑스 귀족사회의 현실..

그 시절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길 바라며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렝피아.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외면한 박근혜.

그리고 그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해당 작품의 배경과 박근혜가 처한 상황은 상당히 절묘하게 맞아들어가지요.

이걸 과연 외설이고 혐오라고 볼 수 있는가 ?

현재의 상황과 어울리는 작품을 골라 패러디한 풍자 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출처 : 뽐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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