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김앤장 압수수색’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12월 3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거래에 관여한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사무실과 당시 일본 측 소송을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김앤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된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변호사만 6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총 직원은 3천명에 육박하고 있는 김앤장은 삼성의 변호사 보유 숫자를 능가하며 우리나라 최고 그리고 최대의 로펌으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그만큼의 악명도 지니고 있다.

◎김앤장은 언제부터?

김앤장은 1973년 김영무가 설립하고 장수길이 합류했다. 그들의 성을 따서 합동 법률사무소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탄생한 김앤장, 그들은 대한민국의 창과 방패로 쓰이며 오늘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창과 방패는 언제나 자본과 권력의 호위병의 되어 우리나라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약자들을 눈물마저 짖밟기로 유명하다.

◎김앤장의 왜 권력과 자본의 노예인가?

‘국가부도의 날’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던 해, 1997년 국가부도의 날 갬앤장은 미국 기업 론스타에게 외환의행을 헌납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대한민국 기업들은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속히 무너졌다. IMF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인수 합병에 박차를 가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외환은행은 합병 위기 속에서도  독일 ‘코메르방크’의 대출금을 지원받아 간신히 구조조정에 했다. 하지만 결국  2003년에, 미국 론스타 펀드에 매각된다. 객관적 흐름 속에서 김앤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일본에서 골프장을 운영중이던 론스타는 명백한 산업자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자본의 금융권의 장악을 막기 위해 금사분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론스타는 로비를 통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다. 이후 론스타는 주가조작을 통해 헐값이 인수한 외환은행을 대한 민국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2조 원의 막대한 부를 챙기고 다시 매각했다.

결국 론스타는 ‘김앤장’이라는 방패를 통해 세금의 의무도 금산분리 정책을 위반한 채 금융을 인수한 범법의 책임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2. 한국의 로펌 ‘김앤장’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비수를 꽂다

2016년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의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미쓰비시는 ‘김앤장’이라는 방패를 선택한다. 당시 재판장은 강제 징용자들과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김앤장 측을 설득했으나 김앤장은 이를 거절했다., 미쓰비시를 위해 사즉생 생즉사를 각오한 김앤장의 결연한 의지였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로펌은 일본 제국주의 속에서 성장한 미쓰비시를 위해 장렬한 싸움을 선택하는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로펌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흘리는 김앤장을 이중적 행태를 통해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은 또다시 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3.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영국 대기업의 방패가 된 김앤장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 옥시레킷벤키저의 모기업인 영국 레킷벤키저는 김앤장을 통해 한국의 소송에 대비했다. 가습실 살균제는 안방의 ‘세월호 참사’로 악명 높은 사건이었고 특히 영유아나 태아가 사망한 기록적인 기업 범죄 사건이었다. 이때도 김앤장은 한국의 피해자들의 사망과 장애를 무마시키기 위해 최고의 방패로 등장하기

4. 뛰는 김앤장 위에 나는대기업?

2017년 서울 종로구 한 술집에서 김앤장 소속 신입 변호사 10명과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 째 아들인 김동선이 동석했다. 김동선은 고압적인 자세로 김앤장 변호사들에게 폭언을 했다. 술이 취한 김동선은 결국 술에 취해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리고 여자 변호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모두 김앤장의 변호사들이었다. 하지만 김앤장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법권을 쥐락펴락 하는 엘리트 변호사를 무력화시킨 대기업 자본 권력의 힘이 실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김앤장의 악명이 명성을 앞서는 이유에 대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가 겪는 변곡점 안에서 공공의 이익과  식민지의 아픈 역사마저도 철저히 배신할 수 있다는 김앤장만의 원칙이 작용했다. 한국이라는 사회와 역사에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채 특권층의 성을 공고히 쌓는데 기여했다.

법률적 논리와 객관적 사실을 명명백백히 가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변호사의 직업적 소명이다. 하지만 김앤장은 수십 년 동안 법이 말하는 정의와 진실을 배반하고 오로지 돈다발의 향취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일제의 반인륜적인 징용의 범죄에서도 약자와 피해자의 수십년 아픔과 고통을 외면했고 IMF라는 국가부도의 상황에서도 그들은 수 많은 실직자와 갈 곳 없는 노동자 그리고 해고의 비극을 겪는 민중을 외면하고 한국의 금융 자본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것도 법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김앤장의 행태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고 비판을 가했만 그들은 시인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력자와 자본가에게 법의 쥐구멍을 제공했다. 설사 그 쥐구멍으로 법의 근간이 흔들리고 진실에 왜곡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