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죽었다.

(사진 = 미국의 사진작가 Elisa No KIM 제공)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어느 깊숙한 산간이 아니라면 아직 도시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소설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 소설의 한 부분이 문득 떠올랐다. 바깥은 아직 여름이지만 누군가의 내면에는 서릿바람이 불고 온기가 접근하지 않은 아픔이 묻어 있는 이야기가 바짝 차가운 계절과 우리 삶에 불쑥 끼어든다.

다음은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中 ‘가리는 손’의 일부분이다.

‘애가 어릴 댄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을 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성을 즐겨 보는 정도 같지만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 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낸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 본 터라 걱정됐다. 지금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굳이 옥상으로 올라와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니까.

소설에서는 요즘 시대를 꽤나 인권의식이 상식처럼 박혀 있는 듯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인천에서는 한 소년이 아파트 옥상에서 동급생의 폭행 끝에 추락사했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후퇴했다.

 

-거 뭐라 그러지? 그런 애도 있던데. …… 맞다, 다문화.
-응, 나도 봤어요. 확실히 눈에 띄더라.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동남아라면서요.
………..
-그러게,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
-그나저나 참 큰일이네.
-그렇죠?
-그죠.
-……
-사람이 죽었으니까.

김애란의 소설 ‘가리는 손’의 소설 한 대목은 마치 현실을 그대로 떼어놓은 것처럼 닮아 있다. 소년의 어머니는 러시아인이며 이혼 후 혼자 소년을 키웠다. 다문화 청소년이라는 그의 출생 배경과 부모의 이혼이 그를 그토록 고립된 폭행의 사각지대로 몰아갔을까

소년은 친구들과 SNS를 즐기며 다문화 가정 출신의 청소년으로서 성장통을 견디며 자신만의 삶을 가꿔야 할 나이지만 결국 끔찍한 폭행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겨우 14살의 동급생 가해자들은 포승줄에 묶이고 얼굴을 가렸다. 한 소년은 죽은 소년의 잠바를 걸친 채 포토라인에 섰다. 그가 걸친 잠바는 죽은 소년의 것이었다. 그는 살인은 인정하되 절도는 아니라며 죽은 친구와 맞바꾼 것이라고 자신의 결백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단지 소년을 죽였을 뿐이라는 14살 피의자의 당돌한 결백에 대해 분노를 넘어 공포감이 들 정도다.

14살 다문화가정의 한 소년이 폭행을 피한 길이 죽음이었다. 지금 학교 폭력과 약자를 향한 집단 이지메의 환경은 분명 어른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이 사회에 만연한 약자를 향한 폭행과 그 모습을 닮은 학교 폭력과 집단 폭행은 충격처럼 다가오지만 우리 주변에 풍경처럼 만연하다. 20대 청년은 70대 노인을 때리고 40대 장년은 70대 경비원을 죽였다. 만연한 약자에 대한 이유 없는 혐오와 폭행이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심신미약’이라는 변명으로 근거없는 관용을 중단해야 한다. 이들에게 죽음에 응당한 사법적 처벌만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한국에서 소년을 키우던 엄마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러시아에서 처음 한국에 왔던 것처럼 그녀는 남편과 자식을 인륜과 인재(人災)로 모두 잃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겨울 혼자 남은 소년의 엄마가 견뎌야할 세월이 가혹하다.  [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