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과 소비의 외로운 외줄타기

(사진 = PYMNTS.COM 발췌)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의 사랑과 그들의 소득을 ‘먹고’자란다. 태어나서 대학교육까지 시키는 데 수 억 원이 든다고 하니, 한 명의 사람이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할 때까지 부모의 소득은 분쇄될 지경이다. 사실상 ‘수저계급론’에 의한 계층 차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비단 어린 아이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소득은 또 어떠한가. 장밋빛 미래를 위해 수 천 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아도 취업 자체가 힘들고 설상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물가 상승률에 못 미치는 임금으로 결혼이나 주택 매매의 경제적 핵심 계층으로 도약하는 진입로에서 크게 좌절한다. 성남시와 서울시는 ’청년 배당‘제도를 통해 서울시의 경우 6개월 동안 월 50만원의 구직 활동비를 일정 기간 지급하거나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매 분기당 25만 원의 지역 화폐를 제공하여 그들의 취업 공백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구제책이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5년 oecd기록된 자살율 비교. 자료 = oecd자료 발췌)

사실 한국인의 소득 체계는 연령이 상승함에 따라 안정도가 급격히 쇠퇴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축적된 자산으로 은퇴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부채 혹은 빈곤 계층으로 추락하는 일이 빈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융 제도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빈약한 경제 구조는 그들의 삶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결국 서민층과 중산층은 IMF와 같은 경제 쓰나미가 몰아칠 때 폭풍을 피할 수 없이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우리는 이제 생애 주기에 맞춘 ‘소득’과 ‘지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학령기의 교육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는 세계 경제의 변화와 변수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따라서 경제 전반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소득과 지출’에 대한 보편적인 모델을 통해 자신의 연령과 생애 주기의 상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들어 4차 혁명 시대를 준비하면서 소멸할 위기에 놓인 ‘인간의 노동’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제조업은 인간의 노동력과 기계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노동에 따른 ‘소득’또한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가에게는 기회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사망 선고다.

선진적인 복지 제도를 구축한 북유럽의 국가들 중 스위스는 한 달에 월 300만원에 달하는 기본 소득의 시행을 두고 국민 투표를 시행했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해 부결된 바 있다. 기본소득이 본격적으로 시행 이후 인플레이션과 모럴 헤저드 등의 부정적 여파에 대한 제도 보완이 뒷받침 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복지 제도는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를 훨씬 앞서고 있다. 대학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독일과 프랑스는 두 말할 나위가 없고 북유럽에서 ‘실업’은 삶의 하나의 과정일 뿐 인생의 파멸과 좌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실업 수당이 생활을 지탱하기에 부족함에 없다는 의이다.

‘기본 소득’은 이제 나태한 낙오자들을 위한 망상이 아닌 언젠가는 논의되어야할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지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기본 소득’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혹은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시민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또한 공동체의 일원들이 안정된 삶을 꾸리기 위한 중요한 정부 재정 정책이다. 생애 주기와 ‘소득’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자신의 생애 주기에 맞는 ‘지출 모델’도 필요하다.

“you only live once” 한동안 ‘욜로’가 유행했다. ‘한 번 뿐인 인생 마음껏 즐기자’를 표방하며 젊은이들의 ‘소비’를 촉진한 모토였다. 사실‘한 번 뿐인 인생’을 빙자한 과소비 촉진 운동이었다. 인생은 한 번 뿐이지만 신용카드 할부 값은 여러 번이라는 사실을 매 달 발송되는 카드 명세서로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특히 소비의 수요가 증폭되는 20~30대 젊은 여성들은 과도한 소비 패턴의 수렁에 빠지면 그것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luxury goods’라는 단어가 사치재가 아닌 ‘명품’으로 둔갑하며 개인의 가치와 가치재를 동일시하는 허세 문화가 팽배한 상황에서 대출의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나 가방, 패션 심지어 성형 대출까지 성업 중이니 ‘소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나 절제의 습관이 없다면 순식간에 채무자로 전락될 수도 있다.

인생은 어쩌면 소득과 지출의 상등 관계를 걷는 외로운 줄타기이다. ‘돈’의 문제만 없으면 삶도 맑고 투명한 피부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태양’이라는 ‘사회적 삶’에 노출되면서 의도치 않은 피부 트러블을 겪으며 늙어간다.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소득의 총체 속에서 어떤 ‘지출’을 할 것인가에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