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와 조기교육

(이미지 = 청문회 당시 우병우)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우리나라 부동산은 학원가가 결정한다. 아파트의 프리미엄이 붙는 원인도 ‘학군’에 기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단지 내 초등학교가 있는 ‘초품아’의 경우 타 단지보다 아파트의 프리미엄을 더 받는다. 아이들의 대입은 중학교에서 결정된다는 떠도는 민간의 ‘썰’을 따라 아파트를 옮기기도 하고 고등학교의 경우는 입을 댈 필요가 없다.

강남 대치동의 낡은 아파트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드는 ‘학원가’의 입지 때문에 그것은 조기교육부터 ‘대학 수학’의 수강이 필요한 대학교육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박근혜 정권 때 한창 권세를 떨치던 ‘우병우’는 영주의 수재로 불리며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는 경기고-서울대 법대의 코스가 아닌 경북 봉화군의 ‘개천에서 용’이 난 케이스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학맥으로 이어진 ’이너 써클‘에 들지 못했다. 그는 그만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검사가 되어서도 더욱 악착같이 ’성과‘에 집착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유수한 집안의 사위가 되었고 재력과 권력을 모두 가진 그에게 ’처가집‘이라는 든든한 실탄까지 챙기게 되었다. 우병우의 장인 고 이상달 회장은 최순실의 생부였던 최태민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최순실은 우병우의 장모와 막역한 사이라고 하니 그의 영전은 어쩌면 예정된 각본이었다.

이후 우병우 개인의 역량과 함께 여러 인맥과 학맥이 그리고 처가의 재력까지 합해 그는 거대한 권력의 괴물이 되었다. 사법고시에 소년 등과한 우수한 두뇌를 가졌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빈약했던 ‘천재 괴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만약 우병우가 권력에 대한 집착과 출세주의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공무원으로 안락한 삶을 즐겼을 텐데 그의 과도한 출세주의는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우병우는 명석한 두뇌로 인해 집안의 기대주로 성장했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을 맞은 그의 아버지가 그를 얼마나 아꼈을 지는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서울대 법대 입학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군부 독재 정권하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사회에 대한 비판과 그 시대의 정의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한 재능을 발휘하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공부 잘 하는 학생’이자 서울대 입학 그리고 소년 등재라는 모든 타이틀을 조기에 마스터한다 해도 그의 생의 단 한 순간조차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는 그의 ‘휴머니즘적 가정교육’의 부재의 탓은 아닐까.

예전에는 아이가 명석하게 태어나면 오로지 ‘공부와 학업’에 집중하도록 그야말로 공부 기계를 만드는 집들이 많았다. 요즘이야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 되었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학벌’을 위한 공부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었다. 학벌이 결혼과 직업 그리고 한 인간의 인생을 완성하는 핵심 부품 같은 역할을 했으며 마치‘학벌’이라는 것은 제 2의 사회적 유전자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 집착 때문에 아이를 억압하고 생각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부모가 있다.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고 중국의 경제 성장에 맞춰 중국어를 배우게 한다. 이것은 조기 교육의 탈을 쓴 부모의 욕구 분출의 도구로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것과 같다.

지적인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입시와 시험이 하나 인간의 삶을 압도하는 비중이 큰 국가에서는 더욱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우수한 지적 능력을 겸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험도 하나의 재능이며 그 재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지식보다 값진 지혜가 성숙해 갈 수도 있고 개인에 따라 ‘지식’의 시간이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하면 된다’라는 성공 포비아에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누군가는 스스로 실패자의 낙인에 살아가야 한다. 시험과 학력이라는 족쇄는 계층을 만들고 불평등의 고착화시켰다.

만약 내 자녀가 혹시 우병우를 혐오하면서도 혹시 내 아이는 우병우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근본적으로 ‘부모된 자’들은 이해와 비판의 지혜를 통해 이 사회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할 것이다.[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