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미용실 이지헤어 권오석 원장을 만나다

홍대 언저리에 자리한 미용실 이지헤어. 아침 일찍 찾아간 홍대는 저녁과 달리 한산했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이지헤어는 차분한 아침공기에 어울리는 정갈한 모습이었다. 원장이 직접 커피를 한 잔 내려줬다.

그러면서 시럽을 넣을지 물어봐주더라. 시럽 취향은 소위 초딩 입맛으로 여겨져 처음 보는 미묘한 사이에서는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요건이겠다. 이런 암묵적 상황을 파악했는지 원장은 한 번 더 목소리를 냈다. “시럽 안 넣어서 드세요?” 두 번 권유는 속내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한 수치다.

기자는 이런 고도의 배려를 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원장은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아 계면쩍은 모양이었다. 천성적으로 겸손한 그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해야만 하는 이 시간이 가시방석과 같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힘을 실어 이지헤어를 소개해줬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겸연쩍은 그의 웃음과 배려가 서린 커피 한 잔의 여운이 남았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격식이 아니라 편안한 시간이 아닌가 한다. 편함은 신경 하나하나에 자연스러움이 푹 배어든 상태와 같다. 상대의 배려가 없이는 편한 시간은 요원하다. 그의 희생 덕에 오랜만에 편안한 인터뷰 시간을 가진 것 같다.

▲ 홍대 중심가에서 뻗어난 골목에 이렇게 세련된 홍대 미용실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외관과는 달리 상호명이 이지헤어인데요. 화려함을 추구할 것 같은 미용실에서 이지헤어라는 이름을 짓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난 2009년 홍대 한복판에 둥지를 튼 이지헤어는 지금까지 고객님들이 편하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미용실로 자리해왔습니다. 평균 10시간 이상 업무에 시달리지만 그 외 시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재 직장인이죠.

동료, 상사, 부하직원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경조사, 육아, 집안일 등까지 한 사람이 이고 가는 짐은 점점 거대해져 어깨를 짓누르는 모습이에요. 이런 직장인이 머리 한 번 하러 오는데 격식 차릴 필요 없잖아요.

게다가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일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일에서도 동일하다고 하더군요. 결혼과 같이 즐거운 일에도 부담이 느껴지면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에 이지헤어는 고객님들에게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편안함을 드리고 싶었어요.

미용실에서라도 작은 웃음을 찾아가실 수 있도록 노력한 거예요. 머리를 하는 것도 일상 중에 하나잖아요. 반복되는 굴레에 머리하는 시간만큼은 우리가 힘을 모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이곳을 찾는 고객님들 중에는 청담동에서 관리를 받다가 옮겨 온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화려함의 상징인 청담동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불편한 면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지헤어의 위치는 홍대지만 골목을 비집고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럼에도 손님들이 이곳까지 발걸음해주시는 게 다름 아닌 지친 일상의 위로 덕분이겠죠.

▲ 어떻게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는지 궁금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요. 직원 모두가 고객님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죠. 높은 분이 왔다고 해서 호들갑 떠는 게 아니고 비교적 낮은 분이 왔다고 해서 터부시하는 것도 아니에요. 시술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도록 거품을 뺐고요.

커트 드라이 염색 펌 드라이 가격을 살펴보면 프랜차이즈 대비 30%가량 저렴해요. 또한 의례적으로 권하는 제품의 영업은 일체 없습니다. 보통 디자이너와 고객의 관계가 깊어지면 제품이라도 하나 사도록 권유하잖아요. 제가 일전에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할 때 직접 보니 이런 장면은 언짢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이지헤어에는 학생보다 직장인의 내방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사장님들이 더러 오시는데요. 이를 테면 미즈노코리아의 대표님이 단골이시거든요.

이야기를 해보면 대표님도 청담동에서 머리를 하셨는데 소개를 받고 이지헤어에 왔다가 “콧대가 높지 않은 곳 같아 부담 없이 온다”며 단골이 되신 거예요. 아무래도 책임 부담이 더욱 가중될 자리에 있는 분이신지라 사장님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선호하시는 것 같습니다.

▲ 편안함이 고팠던 것은 제 일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편한 관계를 추구하시다 보면 뿌리 깊은 권위의식과는 충돌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닌데요. 으레 고객과 디자이너를 갑을관계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죠. 고객은 갑이니깐 불만을 제기하면 무조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부터 이런 허례의식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르는 사람입니다.

기술이 모자랐다면 당연히 디자이너가 발 벗고 나서서 고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앞뒤 없이 갑과 을의 위치를 고수하신다면 정중히 거절을 합니다.

이는 손님뿐만 아니라 이지헤어 직원 모두에게 마찬가지예요. 제 첫 번째 고객은 손님이 아니라 직원입니다. 직원이 먼저 대우를 받아야 고객에게까지 선순환이 이뤄지죠. 그 물꼬를 트는 게 위계가 아니라 편안함인 거예요.

제가 먼저 직원을 갑을관계로 대하지 않고요. 교육을 할 때도 고객과 우리는 갑을이 아니니깐 서비스에 집중하되 부당한 요구에는 곧장 선을 그으라고 말을 합니다.

▲ 첫 번째 고객인 직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면?
보통 미용실에서는 디자이너와 스텝의 출근시간에 차이가 있죠. 군대문화를 신봉하는 한국문화에 위계를 잡기 위한 방편을 출근시간차로 잡은 모양이에요. 하지만 이지헤어는 예외 없이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합니다. 5분 동안 함께 청소를 하고 오픈을 해요. 마감 전에도 다 같이 빗자루를 들죠.

직장에는 오너와 직원이 있지만 그 전에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어느 회사가 먼저 사용해서 의미가 퇴색될 수 있지만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직원 한 명이 이지헤어의 일부분임을 매번 상기해요. 같은 사람끼리 깨끗이 청소하는 게 이상할 거 뭐 있나요.

그럼에도 한국문화 자체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데는 아무래도 걸림돌이 있잖아요. 그래서 따로 미팅시간을 두고 맨투맨으로 대화를 해요. 한 번은 스텝이 아버님이 편찮으시다고 하더군요.

그냥 눈감기 뭐해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해드릴 수 있는 성의도 보여드리려고 했거든요. 제 딴에는 어떻게 보면 직원이 우리 재산이니 당연한 움직임인데요. 스텝이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제가 몸 둘 바를 몰랐던 적도 있어요. 올해 7년차인 이지헤어에 7년째 머물고 있는 직원들이 있다는 건 제 통장의 액수보다 큰 자산입니다.

이번 달에 연남동 이지헤어 2호점이 오픈할 예정인데요. 앞으로도 이지헤어는 직원들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되길 원합니다. 2호점 역시 청소는 디자이너와 스텝이 같이 해야겠죠? 편안한 이지헤어라는 기치에 걸맞은 문화를 형성하도록 앞으로도 열을 올려볼 참입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