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ight and good luck

20세기에 라디오와 TV, 신문과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 인류는 바야흐로 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미디어의 숫자만 해도 차고 넘칠 정도고 사람들은 정부 부처와 정치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알기 위해,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위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여가를 즐기기 위해 그리고 그냥 심심해서라는 간단한 대답도 나올정도로 대중들이 미디어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해졌고,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매체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투입한 미디어는 국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국가의 수장과 정부에게, 사회 지도층에게 항상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되어 왔고, 부패한 정부와 권력자들은 미디어를 이용하여 국민을 우민화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 역시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과의 냉전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반공을 부르짖으며 ‘빨갱이를 때려잡자, 는 반공주의자들이 넘쳐났고 그중 매카시즘으로 아직도 회자하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반공을 이용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자신의 정적과 반대파를 제거하는 손쉬운 도구로 작용했다. 이에 미국 주류 언론은 공산주의자로 몰릴까봐 침묵을 강요당했고 공산주의자 색출에 동원되어 마녀사냥을 벌였다.

특히 매카시 의원이 국무부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고 그들의 명단이라며 매카시 리스트를 들고 나왔을때 매카시는 미국사회를 조종하는 권력자가 되었다. 그에게 찍힌 인물들은 공산주의자라며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 강제로 직장을 잃거나 은퇴를 당하거나 검찰 조사를 받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하면서 사회에 거대한 해악을 끼쳤다. 그 광풍은 할리우드까지 상륙하여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받는 연예계 종사자들은 강제로 활동을 쉬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반공 무드에 휩쓸려 나라가 어지러울 떄 매카시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등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CBS의 전설적인 앵커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 1908-1965)다.

edward murrow 출처-위키피디아

1908년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머로는 1930년에 워싱턴 주립대를 졸업하고 1935년에 CBS 방송국에 입사했다. 2년 뒤 유럽 특파원으로 발령이 났고, 그곳에서 2차 대전을 맞이한다.

1940년 독일 나치 제국이 영국 런던에 침공해 매일 폭격을 퍼부을 때 머로는 목숨을 걸고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가 라디오로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으며 당시 영국 총리 처칠이 생명의 위험이 있다며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계속했다. 머로의 방송은 당시 유럽 파병에 회의적이던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미국 사회에서 미국 남성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게 하였다. 에드워드 머로의 방송은 후일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관 자료로 선정된다.

런던 특파원시절의 머로 출처-위키피디아

2차 대전이 끝나고 귀국한 머로는 때마침 등장한 새로운 매체인 텔레비전을 이용한 방송인 See It Now 라는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되었고 프로그램은 광고가 완판되는 실적을 올리며 CBS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다. 방송이 순조롭게 순항하던 그때 매카시 의원이 등장했고 반공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미국 사회는 급속도로 혼란에 빠진다.

언론들은 공산주의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침묵했고 유일하게 에드워드 머로 만이 매카시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1954년 3월 9일 방송에서 머로는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매카시의 행적을 비판했고 이에 분노한 매카시는 CBS에 4월 6일 반박 방송을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방송 당일 시종 일관 냉철한 머로의 논조에 흥분한 매카시는 머로의 대한 인신공격을 잔뜩 담아 방송을 임했으며, 이는 TV에 그대로 여과 없이 방영되었다. 하지만 매카시즘에 휘둘리고 있던 대중사회는 여론 조사에서 머로와 CBS 제작진이 공산주의자라 생각된다는 압도적인 응답율을 보여주었고 CBS 보도국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머로의 노력은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자는 여론에 기폭제로 작용했고 TV 청문회에서 매카시의 주장은 허무하게 전부 허구로 드러난다. 이후 워싱턴 상원에서 매카시에 대한 의결안이 통과되고 매카시는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See It Now는 예능프로그램에 밀려 시간대를 변경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영된다.

1958년 시카고에서 열린 라디오 텔레비전 뉴스 국장 총회에서 머로는 작심한듯한 도발적인 발언, 일명 바보상자 연설(wires and lights in a box)을 한다.

“처음에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고 말씀드렸죠. 우리 방송이 이대로 가면 역사의 비난을 받을 것이며,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생각과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맙시다. 에드 설리번이 장악한 일요일 저녁 시간이 ‘미국 교육 현실 진단’에 할애되리란 꿈도 가져봅시다. 한두 주 뒤면 스티브 앨런의 시간도 ‘미국의 중동정책 철저 분석’에 넘어가겠죠. 그런다고 광고주 기업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을까요? 주주들이 불평과 분노를 토로할까요? 수백만 시청자들이 조국과 기업의 미래가 달린 주제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 외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자만에 빠져 고립되든 말든 아무도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단 한 기자의 의견이라도 논박하려면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구요. 만약 그들이 옳다면 무엇을 잃어야 될까요? 그들이 옳다면 TV는 바보상자가 되어 세상과 격리하는 도구로 전락하겠죠.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선사합니다. 허나 그것은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번쩍이는 바보상자(wires and lights in a box)에 불과합니다. 좋은 밤 되시고, 행복하십시오(Good night, and Good luck.)”

이 발언 이후 머로는 CBS의 이사들에게 단단히 미움을 받게 되었고 방송국 생활에 환멸을 느낀 머로는 1년간 휴직 선언을 하며 유럽으로 떠난다. 말이 휴직이지 세간의 평가는 CBS가 사실상 그를 해고한 거나 다름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년간의 휴가가 끝난 뒤 케네디 정부는 머로에게 미 정보국 국장직을 제의했고 국장직을 받아들인 머로는 CBS를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으로 사망한다.

그의 사후에도 CBS의 후배 기자들은 정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월터 크롱카이트라는 명 앵커를 배출해냈으며 아직도 어떤 외압이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정론을 지키는 언론사로 정평이 나 있다. 2005년엔 헐리웃에서 매카시와 설전을 벌였던 그의 이야기가 ‘Good night and good luck, 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개봉했으며 이 작품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 된다.

영화 good night and good luck 출처-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도 에드워드 머로 못지않은 명 앵커 손석희 아나운서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공중파 언론은 침묵을 넘어 정권을 찬양하거나 국내 정치권에 큰 사건이 터질때마다 대중의 시선을 돌리고자 연예기사와 북한 소식, 생활 정보 기사를 탑뉴스로 올려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하는 몰지각한 행태를 보여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공중파와 달리 JTBC는 손석희 보도국 사장의 주도 아래 K스포츠 재단-미르재단설립 의혹에 지속적인 보도를 해왔고 정치권의 추궁과 의심을 받던 박근혜 정권은 여론 전환을 위해 2016년 10월 24일 갑작스레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날 저녁 손석희 앵커는 태블릿 PC 보도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만 천하에 드러내었고 이는 국민에게 엄청난 분노를 가져왔다. 무려 7주간에 걸친 대규모 촛불시위를 통해 정치권은 박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키게 되었다.

이 처럼 올바르고 정의로운 언론인들에 의해 사회는 정화되고 발전한다. 그러기에 미디어는 사실을 기반으로 무엇보다 정확하고 명확한 논점을 가지고 보도를 해야한다.

수많은 매체가 난립한 미디어의 시대다. 에드워드 머로의 말처럼 미디어를 바보상자로 만드느냐, 정보와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만드느냐는 방송국 종사자, 언론인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에 달려있다. 본 기자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속 기사를 쓰고자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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