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서 남북 공동학술대회를 열자

박길홍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초 야심찬 ‘통일대박론’을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이후 ‘드레스덴 선언’으로 포괄적 대북 지원책과 통일 구상을 밝히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촉구하였다. 이 구상을 구체화할 싱크탱크인 ‘통일준비위원회’도 발족하였다.

올해는 정부가 통일 후 한반도 국토 개발의 미래상과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우고 북한의 권역별ㆍ부문별 발전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일부, 통일준비위원회를 비롯한 전 부처가 참여하여 통일 한반도 국토 개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에 대한 애국충정은 납득이 가지만, 막상 북한 김정은 정권은 박 대통령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뿐만 아니라 대남 군사위협도 연일 지속하고 있다.

남ㆍ북한(南ㆍ北韓) 정부의 수준이 똑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전혀 협의하지 않은 통일 청사진과 로드맵 그리고 북한의 권역별 발전계획은 허구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다른 나라 내정간섭이다.

북한이 대한민국 및 입주 기업인들과 전혀 사전협의 없이 개성공단의 임금인상과 남한자산 압류를 공표한 것도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대단히 무례한 조치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추진 전략을 보면 내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흡수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대한민국은 자주국방이 안 되는 나라이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 핵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10~1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최대 100개까지 제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핵보유국을 우리가 원하는 조건으로 흡수통일 하는 것을 전제로 통일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천진난만하고 일방적인 우리 시각일 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날 한민족의 정체성과 우수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

기원전 2333년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기반으로 고조선을 건국한 조선족과 그를 계승한 고구려(高句麗)의 고려인, 그리고 기원전 2세기 한반도 중남부의 마한(馬韓)ㆍ변한(弁韓)ㆍ진한(辰韓)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주역인 한민족은 하나의 뿌리와 공통된 언어를 갖는 한 민족이면서 정치적ㆍ군사적 경쟁과 투쟁의 역사를 살았다.

한민족은 당나라에 의지한 삼국통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잃었고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의 사대주의에 입각한 위화도회군으로 만주와 우리 민족의 인연은 거의 끊어졌다. 하지만 조선(朝鮮)은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고 188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국호로 선포하며 한민족(韓民族)ㆍ조선족(朝鮮族)ㆍ고려인(高麗人)이 한 민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자주성을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그리고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한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받아들이며 반만년 역사를 정립하게 되었다.

비록 한일합방은 되었으나 상해임시정부에서도 민족 단결을 상징하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국호를 정하였다. 하지만 해방 후 민족통일을 추진하던 민족주의자들이 정쟁의 희생양이 되면서, 한반도 중남부는 한민족 통일의 뜻을 계승한 대한민국, 북부는 조선족ㆍ고려인을 계승하는 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한 민족이 한반도 북부, 남서부, 남동부를 기반으로 반만년을 패권 경쟁을 해 왔으며 오늘도 남ㆍ북, 또 남은 동ㆍ서 지역감정으로 갈라져서 투쟁의 역사를 지속하고 있다.

이제 드디어 대한민국의 한민족(韓民族)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족(朝鮮族)ㆍ고려인(高麗人)은 한 민족이 아니라 이(異)민족이 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국책사업으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전제로 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여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 조선족ㆍ고려인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귀속시켰다.

동북공정은 중국의 시간적ㆍ공간적 영토를 확장하는 국가사업으로서 2002~2006년 기획ㆍ추진되었다. 직접적인 동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2001년 만주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들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하면서 시작되었다.

만약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고구려사는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만주의 고구려 고분은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북한의 고구려 고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중국은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을 강화하고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중국 내 조선족ㆍ고려인 소수민족의 민족적 정체성 및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다. 즉 남북통일 후 북한의 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을 마련한 것이다.

일사양용론은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구축한 식민사관(植民史觀)인 만선사관(滿鮮史觀)과도 일맥상통한다. 식민사관은 한국사가 고대 중국의 식민지배에서 태동했다고 분석하며 조선은 자주ㆍ자립할 수 없는 나라라 하고 한국 문화의 독자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중 만선사관은 한반도 역사가 만주사의 일부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비록 조선은 외세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 정책을 펼쳤으나, 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ㆍ고려는 중국 본토의 한족(漢族)과 영토 확장을 위하여 정신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치열한 실력대결을 펼쳤다.

또한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인 금속활자를 고려시대에 세계 최초로 발명ㆍ실용화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측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의 측우기도 자기들이 제작하여 조선에 하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세계 과학사학계도 이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역사는 외세의존이 민족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가르쳐 주었다. 만주를 잃고 이제 한반도 북부까지 잃으면 후손에게 우리 세대는 역사 민족적 죄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정부는 한민족 통일을 위하여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군사주권 마저 없다. 즉 전쟁이 났을 때 미국에 군사 작전권이 있다. 대한민국의 최대의 적국이면서 휴전 상대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맺은 휴전협정의 당사자도 아니다. 미국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ㆍ중국이 휴전 당사자이다. 민족의 안보와 통일은 다른 나라의 동의나 허락을 얻지 않고 자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독립 국가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보면 이념과 주의는 시대ㆍ상황ㆍ환경에 따라 변하나 민족은 영원하다. 서구의 문명 발전단계에서 자신들의 사회제도의 최적화를 위해 도출한 이념과 제도를 맹종하여 민족이 분열되는 것은 사대주의의 변형된 표상이자 민족적 수치이며 심하면 무의식에 아직도 남아있을 수 있는 민족적 열등감의 표상으로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민족의 번영은 민족의 정신력과 총체적 역량의 결집에서 온다. 흉노족, 거란족, 몽고족, 말갈ㆍ여진ㆍ만주족, 일본 등 우리 형제ㆍ이웃민족들은 모두 민족통일을 통하여 세계적인 강대국을 건설한 경험이 있다. 한민족은 세계적으로 한 민족이 적대적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다른 나라의 민족분쟁은 민족적 각성과 민족주의의 부상에 따른 민족 자주독립 전쟁이다.

남ㆍ북으로 갈라진 한민족ㆍ조선족ㆍ고려인이 한 민족으로서 대한민국이 만천하에 천명한 민족단결의 뜻을 계승할 때이다. 한민족 통일은 선거용 포퓰리즘을 위한 정치공학적 도구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기초과학ㆍ군사강국으로 발전하였다. 남ㆍ북이 머리를 맞대고 자주적으로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파이를 키우자.

그 돌파구로서 먼저 민족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정부 주최로 다방면에 걸친 남ㆍ북 공동학술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한민족의 민족적 정체성과 우수성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연구ㆍ토론을 시작하자. 이러다가는 조선족ㆍ고려인은 중국민족이 되고 한민족의 터전은 고대 삼한시대의 한반도 중남부로 국한될 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