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조건 ‘양육비를 지불하라’

(사진 = 픽사베이)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작년 새어머니와 친아버지가 자녀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故고준희 양’사건이었다. 재혼 가정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자녀를 키우는 것이 이론처럼 쉽지 않겠으나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으면 법률적 마지노선은 지켰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법률적 도덕적 인격적 야수성을 보이며 아이를 살해하기에 이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동거하는 여자의 남자의 의붓 자녀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기도 하다. 혈연관계에서 벗어나자 딸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쾌락의 도구로 삼은 파렴치범에 대해 법원은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0대의 어린 소녀가 법정에서 사형을 외쳤으나 법원은 강력한 처벌의 의지로 고작 실형 ‘6년’을 선고했다.

이혼을 고려할 때 남녀의 각자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자녀가 있을 경우 새 출발의 족쇄가 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자녀는 그 정도의 부모를 만나지 못한 그 정도의 불운만 가졌을 뿐인데 사실상 이혼 가정에서 겪는 자녀의 혼란은 상당히 크다.

아이를 양육하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얻고 예산을 배정하고 여론을 수립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뒤 30만원으로 시작한 양육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의 신생아에게 히 월 30만원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물론 한 가족에서 차지하는 생명의 가치는 자본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객관적 수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단 그렇다.

수억대의 자산가부터 털어봤자 먼지밖에 나지 않은 사람들까지 이별에 담긴 사연이야 각양각색이겠으나 설사 그들이 합당하면서도 명료한 이별로 인생의 일단락을 마감하더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의무가 있다. 바로 “양육비 전쟁이다”

헐리우드 대표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도 현재 양육비 소송 중이다. 아이 여섯을 키우는데 충분하지 못한 ‘아빠 페이’에 대해 졸리는 격분했다. 아버지 브래드가 충분한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졸리의 눈물 나는 사연의 요지다.

세계적인 스타 브래드 피트도 휘말리는 양육비 분쟁은 사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이다. 사람이 생존하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아더, 숨만 쉬어도 몇 십 몇 백이 필요한 환경에서 과감히 이별을 택한 아버지의 존재는 오직 ‘양육비’로 증명된다.

필리핀으로 사업 차 떠나거나 한국인 유학생들이 필리핀 현지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필리피노’라고 한다. 한국인 아버지를 둔 ‘필리피노’의 숫자가 4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필리피노’의 문제는 이제 필리핀 여성과 사회 단체들의 집당 소송전으로 확대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머지않아 도래할 현실이다.

카톨릭을 국교로 하는 필리핀의 낙태 금지와 피임에 대한 다소 관용적인 인식을 그 원인으로 꼽는 것도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생명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여성을 쾌락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마초 남성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혹자들은 자피노아 치피노 등 일본과 중국 한국을 막론하고 필리핀과의 혼혈은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다며 필리핀 여성들의 느슨한 성의식과 한국 남성들의 언행을 의심하지 못한 여자들의 ‘순진함’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인들이 개발도상국가의 궁핍함을 파고들어 성을 매수하거나 현지처를 두면서 타인의 불행을 나의 쾌락으로 맞바꾸는 야만적 인권의식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필리피노 아이들이 감당해야하는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의 순환반복적인 삶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또다시 성을 팔고 남자 아이들은 떠돌이가 되어 한국인의 핏줄을 혐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필리피노의 한국인 아버지는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가 있는 이혼가정이나 결혼의 형태 이외에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법원에서는 이러한 ‘양육비 먹튀’아버지에 대해 지급 명령을 내리지만 아버지가 법망의 책임을 기만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법과 아버지라는 이름의 원천적 의무만으로는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에서 마주치는 절망적인 모습들이다.

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필리핀에 자녀를 모른 채 하면서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녀라는 생명의 원적지가 되는 모든 어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녀에게 진 빚, 양육비라는 채무이행각서에서 당신은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고? 당신은 아버지니까 ’[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