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년의 밤’의 한 장면. 사진 = 네이버 영화)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충북 옥천경찰서는 아내와 세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A씨를 구속했다. 그는 자녀 세 명과 아내를 살해했다. 자식에게 죽음의 권리를 행사했던 아버지이자 남편은 자신의 최후를 마감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질척한 삶은 그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고 홀로 세상이 남겨졌다.

그는 검도관의 관장이었고 존경받는 스승이었으며 세 딸을 무척 아끼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대출과 원룸 투자로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채무에 시달리자 생활고 속에서 반인륜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그는 빈곤의 절망을 체감하며 자라날 아이들의 미래보다 차라리 자식을 살해하는 선택을 감행했다. 차라리 ‘삶을 거두는’ 거악을 스스로 행하는 것이 그나마 딸들의 인격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 듯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돈의 위력을 상실한 인격이 감당해야할 몫은 생각보다 가혹하다. 스스로 딸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번뇌는 딸들이 성장과정에서 노출되는 위험한 환경에 놓이게 될 미래의 공포 속에서 고통스러운 낮과 밤을 보냈을 것이다.

아내와 10살 미만의 어린 딸들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아버지의 비정함이 아닌 그의 진심에 귀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통감하는 정상정인 인격의 소유자였지만 한순간 일가족 살해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영화 ‘7년의 밤’이 떠올랐다.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이 음주운전 뺑소니의 살인범이 되고 댐이 위치한 시골 동네를 물바다로 만들며 사람들을 몰살시킨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가 수문을 열었던 이유는 ‘피의 냄새’를 맡은 사이코 패스의 살인 충동이 아니었다.

간악한 인물 오영재의 계략으로부터 아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결국 아들은 살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수몰 당했다. 주인공은 희대의 살인마가 되어 사형수가 되고 면회를 온 장성한 아들이 수문을 연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했다. ‘난 네 아빠니까’

가난한 서민은 가난의 오라에서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없다. 꼼짝없이 ‘살인마’로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다. 그 이면에는 모두 ‘생존’의 무게가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외줄 타듯 조금의 균형점을 잃으면 곧바로 추락한다. 영화에서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실직이 그러하고 현실에서는 아파트의 대출이자와 엇나간 투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충북 옥천의 가장은 은행 대출을 감당할 수 없었고 ‘7년의 밤’의 소설 속의 주인공 또한 대출금과 직장이라는 올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벗어나려고 하면 생활은 더 극렬히 삶을 죄어오고 마침내 ‘살인’을 운명처럼 끌어안았다.

충북 옥천의 가장 살인 사건은 끔찍함보다 서글프다. 가난한 아버지와 빈곤한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그것을 굳이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가치관이 궁색해진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장미의 색을 닮은 아픔과 고통을 먹고 자라기에 권장할 수 없는 인생의 핍진함 속에서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빚과 빛의 경계에서 가종을 잃은 한 가장은 더 이상 신진한 삶을 꿈꿀 수 없고 앞서간 가족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파트 대출이나 투자가 들불처럼 번진 세월이 있었다. 일명 ‘빚내서 집 사기’를 부추긴 정부가 있었고 ‘오늘이 가장 집이 싼 날’이라는 생각으로 주택 투기의 전차를 올라탄 대다수의 서민과 중산층이 있었다. 욕망의 사회 투기 공화국이 낳은 오늘의 비극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부는 10월 대출을 규제하기 위해 개인의 채무를 확대경처럼 관찰하며 부채를 관리하는 ‘DSR’의 전면적 시행을 발표했다.[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