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권희진 기자)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 中-

[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는 사소함을 통찰하는 근본적 사유가 있다. 사람의 만남이란 너무나 일상적이고 현실이지만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의 특별한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 십 년의 과거와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는 미래까지 함께 온다는 것은 형이하학적 현실에서 깜빡 놓칠 뻔 한 형이상학적 가치이다.

우리는 낯선 만남을 통해 환대와 의심을 반반씩 열어두고 언어적·비언어적 표현 양식을 통해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감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만나는 매체의 영향력이 개인의 삶속에 더욱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전의 ‘입소문’은 사람의 입이 아닌 손가락을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대체된다. 작게는 맛 집을 찾거나 진료를 잘하는 병원을 찾을 때에도 누군가에게 물어보다는 것보다 네이버에 검색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인터넷 사용자의 90%는 네이버 플랫폼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의 알람을 확인하거나 네이버 뉴스기사 혹은 일계 예보를 시작으로 ‘사회적’눈을 뜬다. 화장실에서도 네이버 뉴스는 실시간 손안에 도착한다. 복잡한 사안의 경우 댓글로 그 반응까지 결정지을 수 있으니 사건에 대한 감정과 사고가 최단시간의 고민과 과정으로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대중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을 접하는 유명 인사가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예고치 못한 사건 혹은 기사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어쩌면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너무 깊숙이 우리의 일상 속에 초대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을 뜨겁게 달구었던 기사는 여자 아이돌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원조 걸그룹 SES의 슈가 세 아이의 어머니의 위치와 사회적 명성을 배신하고 사기죄로 고소장이 접수된 일대의 사건이었다.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그녀의 역할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순식간에 검색어 1위가 되었다. 그녀는 도박 혐의를 인정했고 채무 변제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녀의 이혼에 관한 기사가 난무하자 그녀의 남편은 재빨리 이혼 기사를 수습하며 가정을 지킬 것을 공언했다. 도박은 팩트고 이혼은 루머였다.

 

(사진 = 권희진 기자)

팩트의 진실을 둘러싼 루머는 거의 공해 수준으로 범람하고 있다. 언론의 자정 기능이나 윤리성은 뉴스 기사의 클릭수와 조회 수의 탐욕에 이미 그 가치를 상실했다. 특히 가십거리의 대명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인 이재명이다. 그의 사생활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울 정도의 루머를 동반한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루머의 ‘방문’으로 대중에게 충격을 준다. 하지만 텍스트의 한 부분을 편집하거나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진실을 간파다가 오히려 오리무중의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한 여인을 정신병원에 감금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당시 지방 정부의 수장이 무슨 권리로 한 여인을 정신병원에 보내 감금했는지 보도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기도 어려운 참으로 낯설고 희한한 루머 기사다.

이재명 현 경기도지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대중의 새 시대를 열망하는 대안적 ‘방문객’의 얼굴로 나타났다. 불륜과 패륜의 아이콘의 루머 속에서 타협하지 않은 모습을 통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비록 루머로 얼룩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중은 루머를 뛰어넘는 진실을 스스로 간파할 수준의 경지에 오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루머에 허우적거리며 정체된 현실을 답보하게 될까.

루머의 혼란과 팩트의 진실의 경계가 오롯이 분리될 때 그 안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이 대중이라는 폭력으로 난사 당하지 않고 국민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의 꽃이 피지 않을까[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