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코리아 권희진 기자] 2019년 최저임금을 후폭풍이 만만찮다. 울산 중소기업협회는 최저임금 불복종을 선언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며 비판의 여론이 몰아치는 가운데 정부가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갈등을 불식시키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들어 소상공인과 아르바이트생들의 갈등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을들’의 전쟁으로 번저가고 있다. ‘한 편’이 되어야 하는 주체가 최저임금을 두고 물러날 수 없는 대결 양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최저 임금을 고사하는 또 다른 의견도 있다. 최저 임금이 급격히 오른 만큼 물가의 급등은 당연한 순리이며 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으로써 임대료 인상폭을 법률적으로 강제한다 하더라도 임대 업자의 ’손실된 소익‘은 고스란히 소상공인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을들마저 최저 시급의 인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펴고 있으니 최저 생계비나 최저 시급으로 생활을 꾸리는 노동자나 서민층을 생계는 이제 그 중심에서 멀어지고 오로지 물가 인상 과혹은 인상된 인건비만큼의 손실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책임의 갑론을박이 난무할 뿐이다.

아침, 연일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은 아침부터 지쳐 각자의 일터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고 창밖에 있는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 쬐는 햇볕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한 노인이 김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뜨거운 햇살 아래 급히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노인의 힘겨운 아침 식사 등 뒤에 보이는 것이 바로 편의점이었다. 그곳 편의점의 주인도 알바생도 모두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때우는 일상이 낯설지 않다. 최저시급이 오르고 최저 생계비도 같이 올라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일상들이 조금 편안한 식사를 하게 만드는 세상이 복지 국가가 지향하는 것이 새로운 정부의 야심찬 목표가 아니었는가?

최저 시급 만원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미래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 값’을 높여야 한다. 노동의 신성함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에 대한 ‘이용료’는 ‘인권’의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다만 현재도 최저 시급의 인상을 단순히 자영업자들의 수익 구조 악화의 주범으로 낙인찍고 싶은 거대한 힘의 역학적 구조는 한 치도 변하지 않았을 확인할 뿐이다.

‘자영업의 위기’의 이면에는 재벌 대기업의 탐욕과 불평등한 수익 배분을 따져 봐야 하며 ‘사람 값’보다 월등한 가치를 인정받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 인상에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얼마전 ‘내년 최저임금이 7급 공무원 월급과 같다’라는 기사가 있었다. 물론 7급 공무원의 호봉과 수당을 제외하면 절대 그 수치의 동일성을 도출할 수 없으나 왜곡된 제목을 언급하며 엉뚱한 7급 공무원 월급을 ‘활용’하여 최저 임금 인상의 최전방에서 일부 언론의 눈물겨운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돈 벌이로 ‘귀천’을 나누고 차등을 두고 차별을 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언제쯤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사람 값’에 대해 제대로 응답할지 그 시간은 언제나 올지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 [이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