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는 이웃을 생각하는 이들의 목소리 (사진제공=픽사베이)

선거철이 되면 각 후보들이 시장, 노인복지 시설 및 장애인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상황이 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을이고 소수의 사람이기에 약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자신이 평범한 일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는 모여서 권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들이 필요를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는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관련 주민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장애인을 둔 학부모와 비장애인을 둔 학부모가 서로 무릎을 꿇으며 특수학교의 설립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 양쪽 모두의 절박함을 보여줬다.

사실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들어서는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제의 경우, 서로 부딪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모여 의견을 서로 나누고 협의를 한 후 나머지 인원은 그 결과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져야 하는 의견 조율의 과정이다.

어려운 얘기 같지만 사실 초등학교에서 각 반의 반장을 뽑아 회의를 하고 그 회의 때 나오는 안건을 들고 반장들끼리 모여 학년마다 회의를 하고 그 회의 결과물을 회장들이 취합해 선생님에게 제출하면 선생님들 역시 회의를 진행한다. 그 결과로 정해지는 것을 아이들에게 통보하고 아이들은 정해진 규칙에 맞춰 행동하는 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가장 단순한 민주주의적 절차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 규칙과 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목소리가 크고 외치는 사람 수가 많으면 변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우리는 4년에 한 번 투표를 통해 각 지역의 대표를 뽑기도 하고 한 나라의 대표를 뽑기도 한다. 그들이 회의를 통해 어떤 지역에 무슨 시설을 짓는지 정하는 것이고 이미 대표를 뽑을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학생들은 정해진 결과를 사실 받아들이면 된다.

Not In My Backyard 내 뒷마당에는 안돼 (사진제공=픽사베이)

구조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장애인시설이나 특수시설을 설립한다는 것에 대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없지만, NIMBY 현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결국 누군가의 뒷마당에는 지어야 하는 시설을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배척당하고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으니까 다른 곳에 지으라는 투정, 다른 곳과 비교를 통해 설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핑계 등을 권리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이기주의를 숨기는 이들이 많다.

물론,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주장 또는 모두의 주장을 함께 목소리 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필요 이상의 요구를 주장하고 있지 않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애인, 노인, 아이들 이제는 반려동물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들은 많다.

스스로가 어리지도 늙지도 않고 특별한 장애가 있지도 않으며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 이라고 해서 다른 이들의 아픔과 불편함,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이들만 모여서 목소리를 낸다면 사회 역시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배려해줄 필요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