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도 못한 전경련의 암담한 현실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사진=브릿지경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허창수 회장을 제36대 회장에 재추대하며 위기를 그대로 보여줬다.

전경련은 24일 오전 제56회 정기총회를 열고 허 회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이번에 4번째다. 특히 허 회장의 유임은 지난해 12월 말, 회원사에 이미 2월 정기 총회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표시한 바 있는 만큼 이례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허 회장의 유임은 전경련이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전경련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모금창구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쇄신안과 차기 회장을 물색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총회 직전까지 차기 회장에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이미 추락하 대로 추락해버린 전경련의 회장직을 고사했다. 이전까지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차기 회장 자리에 하마평되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전경련 회장단 내에서 누구 하나 ‘독배’를 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재계 일각에서는 총회 날까지 차기 회장이 나오지 않을 경우 회장단 내 최고 연장자인 이 명예회장이 ‘임시회장’으로 당분간 전경련을 이끌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다. 전경련 정관에 의하면 회장단 가운데 연장자가 임시회장을 맡는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독배는 결국 돌아 돌아 허 히장에게 맡겨진 모양새다. 전경련이 ‘돌려 막기’도 못한 셈이다. 따라서 전경련이 처한 ‘위기의 시계’는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이다.

문제는 허 회장의 유임에 대해 여론이 싸늘하다는 사실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세력과 재벌기업 사이에서 중개업자 노릇을 한 전경련의 행태에 대해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인사”라며 “연임 동의는 또다시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사퇴 약속을 저버린 허창수 회장은 말뿐인 사과와 쇄신 꼼수를 중단하고 자발적 해체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 회장은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경련의 혁신”이라고 강조하고 “환골탈태해 완전히 새로운 기관으로 재탄생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전경련의 전체 600여개 회원사가 내는 연간 회비 총액 492억원 중 80%에 해당하는 378억 원을 부담하며 구심점 역할을 해온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탈퇴한 상황이라 향후 허 회장과 전경련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회원사는 물론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쇄신안 마련이 긴절한 만큼 향후 전경련 거취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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