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등불이 밝아졌다 [사회이뉴]

정의란 무엇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진실은 여러 사건과 사고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범죄와 관련해서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가치는 동화와 만화에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가치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여러 사건 가운데서도 국민은 정의와 진실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가 항상 승리하고 진실이 항상 밝혀지진 않는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사건이 많이 남아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아이들’ 등 미제 사건을 다룬 영화가 계속 나오면서 미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제 사건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 ‘태완이법’이라고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미제 사건들의 수사에 숨통을 트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진실의 등불이 더 오래 밝혀지게 될 발판이 되었다.

미제 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미제 사건 대부분은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만료된 사건들도 있다. 공소시효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난 사실관계를 존중해 법적 안정성 도모, 시간의 경과에 의한 증거판단 곤란, 사회적인 관심의 약화, 피고인의 생활안정 보장 등이다. 그러므로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실체적인 심판 없이 면소 판결을 해야 한다.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범죄행위가 종료된 때부터 시작된다(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된다). 공소가 제기된 때에는 시효의 진행이 정지되고 공소기각 또는 관할위반의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진행한다.

*기산점: 만료점에 대하여 기간의 계산이 시작되는 시점을 말한다.

이러한 공소시효가 수차례 진실의 발목을 붙잡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태완이법이라고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될 경우, 현행 25년으로 돼 있는 공소 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법안은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 시효를 폐지하고 아직 공소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적용하도록 했다. 다만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 강간치사, 폭행치사, 상해치사 등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아 개정 법안에서는 제외됐다.

태완이법은 지난 1999년 5월 대구에서 발생한 김태완(당시 6세) 군 황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발의됐다. 안타깝게도 태완 군은 49일간 투병하던 중 결국 사망했다. 그러나 태완 군에게 황산 테러를 가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 시효 만료가 임박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여론은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일어났고, 2015년 3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추진됐다. 그러나 2015년 7월 10일 대법원이 태완 군 부모의 재정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됐다. 따라서 태완이법은 아직 공소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만 해당하기 때문에 공소 시효가 만료된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은 이 법안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공소시효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사진= 픽사베이)

그러나 미제 사건 희생자들의 희망이 되는 태완이법의 효력이 다른 미제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 2001년 전남 나주시에서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전남 나주시 드들강 변에서 여고생 박아무개양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박양의 옷가지는 모두 벗겨져 있었고, 손에 항상 끼고 다니던 금반지도 사라진 상태였다.  몸의 여러 부위에는 성폭행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확보된 증거는 박양의 혈흔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체액뿐이었다. 결국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는 중단됐다.

유력한 용의자로 30대 남성 김씨(39세∙사건 당시24세)가 수차례 용의 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살인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15년간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 유족들은 원망할 대상조차 찾지 못한 채,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충격과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김씨가 기소되면서 한을 풀 수 있었다. 법원은 김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 만이었다.

드들강 살인 사건 피해자의 사진(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 캡처)

1월 11일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강간 등 살인)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 대해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아울러 20년간 위치추적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을 수강할 것을 명령했다.

진실의 등불이 밝아지고 어둠을 비출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미제 사건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태완이법은 한 줄기 그 이상의 빛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살인죄 공소 시효 폐지, 공소시효 (시사상식사전, 박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