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 ‘오! 캐롤’의 한없이 가벼운 델

‘오! 캐롤’의 델 모나코 정상윤.(사진제공=브릿지경제)


“사실 이런 캐릭터가 더 힘들어요.”

닐 세다카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오! 캐롤’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 델 모나코에 대해 정상윤은 이렇게 얘기했다. 왕년의 스타 에스더(전수경·김선경·임진아)가 운영하는 파라다이스 리조트 최고의 가수로 전국구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바람둥이에 한없이 가벼운 캐릭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크리스토프의 목소리 연기를 하던 때보다 한참 더 가벼워야하는 캐릭터였다.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진지하고 극적인 캐릭터가 접근이 쉽죠. 이런(델 같은) 캐릭터들이 오히려 2, 3배 고민을 많이 해야하거든요.”

최근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리스월드, ‘살리에르’의 살리에리, ‘씨왓아이워너씨’의 기자·강도 등 어둡고 음울한 무대에 주로 올랐던 정상윤에게 델은 그래서 남다른 애정이 깃든 캐릭터기도 하다.

“중간 중간 밝은 작품을 하긴 했어요. ‘투모로우 모닝’도 일상적이고 한량 같은 캐릭터였지만 결혼과 연애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었죠. 델 모나코는 정말 하면서도 즐거워요. 제가 한 캐릭터나 작품 중 가장 밝은 것 같아요.

‘고래고래’도 밝기는 했지만 청춘들이 안고 있는 상처가 있었고 ‘살리에르’는 질투에 눈이 멀었고 ‘에드거 앨런 포’에서는 악마가 돼 버렸죠.

하지만 델은 그런 게 1도 없어서 즐겁게 하고 있어요. 게다가 대사나 캐릭터 등을 많이 생각하고 만들어서 그런지 되게 애착이 가요.”

한없이 가벼운 델,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민한 정상윤

‘오! 캐롤’의 델 모나코 정상윤.(사진제공=브릿지경제)

“가장 큰 고민은 저랑 너무 달라서…고민이라기보다 좀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간을 더 할애하고 대본도 더 열심히 봤어요. 제가 혼자 끌고 가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영화 ‘러브 액추얼리’나 옴니버스 극처럼 다양한 커플들이 나오니 그 안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캐릭터들과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델이 리조트 가수다 보니 인물의 마음이나 감정을 대변하기 보다는 쇼 무대를 위한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가사에 캐릭터의 삶이나 상징 등 모든 게 녹아 있는데 델은 그렇질 않아요. 시대는 옛날이고 가사도 유치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멜로디도 단순해서 ‘에드거 앨런 포’나 ‘살리에르’처럼 ‘우와~’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이죠.”

보기엔 단순하고 편안해 보이는 곡들이 또 마냥 쉽지만은 않다. 정상윤 뿐 아니라 출연배우들 대부분이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원곡자가 워낙 미성이에요. 남자들이 부르기엔 애매한 음들에 걸쳐 있죠. 잘못하면 되게 매가리 없다고 해야 하나…가요나 뮤지컬 넘버들은 인트로, 버스(Verse), 브리지, 코러스 등이 있고 세부적으로 A, B, C 등을 오가는데 ‘오! 캐럴’은 비슷한 음역대에서 머물러요. 중음 위쪽, 보통 노래하다가 음이 탁 바뀌는 그 지점에서 계속 소리를 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오! 캐롤’의 델 모나코 정상윤.(사진제공=쇼미디어그룹)

어중간한 음역대를 오가는 리듬에 델은 ‘파라다이스 최고의 가수’라는 수식어가 꼭 어울릴 흥겨운 춤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춤에 대해 정상윤은 “살아남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웃는다.

“특별히 고난이도는 아닌데 제가 전문적으로 몸을 쓰는 배우가 아니다 보니 캐릭터화를 시키려고 애썼어요. 안무시간에 연습은 물론 집에서도 개다리 춤을 춰보고 그랬죠. 어려서 무용을 했던 (서)경수(델 모나코 역의 더블캐스팅)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자칫 악당 혹은 마냥 가벼운 양아치로 보일 수 있는 델에 대해 정상윤은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되게 순수하다”고 강조했다.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잘 만들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당시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꿈꾸는 지방의 3류 가수로 가닥을 잡았죠. 허세도 좀 있지만 엘비스를 꿈꾸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데 밉지 않잖아요. 잘못도 하지만 천진난만하죠.”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이지만 거의 창작에 가까운 과정을 거친 뮤지컬 ‘오! 캐롤’의 델 역시 80~90%가 바뀐 ‘거창한’(거의 창작한) 캐릭터다.

“연습시간에 정말 많은 걸 시도하고 구축했어요. 여러 가지 시도들 중 가려내고 선택하는 과정은 저와 경수는 물론 연출님, 스태프들 등과 함께 했죠. ‘살리에르’, ‘에드거 앨런 포’, ‘쓰릴미’ 등 무겁고 진지한 작품들은 무대에 오를수록 생겨나는 것들이 많은데 ‘오! 캐롤’은 연습과정이 중요했던 작품 같아요.”

모든 시작점은 “왜?”

‘오! 캐롤’의 델 모나코 정상윤.(사진제공=브릿지경제)


“모든 건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요.”

누군가는 자신만의 캐릭터 스토리를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배우는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한다. 또 다른 배우는 본인이나 지인들의 경험을 대입해 캐릭터를 완성한다.

이 세 가지를 복합적으로 활용한다는 정상윤이 작품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왜”라는 질문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왜 이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는지…계속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대사나 행동, 굳이 제(자신의 캐릭터)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죠.”

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델의 대사를 시작으로 왜라고 묻다 보니 악역이지만 밉지 않은, 꿈꾸는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대사에 골몰하는 정상윤이 만들어낸 웃음 포인트도 적지 않다.

“대본 중에 얘(델)가 이런 말은 안할 것 같은데 나쁜 말들이 있었어요. 진짜 작곡가를 밝히는 문제를 두고 게이브(허규·성두섭), 로이스(안유진·이유리·오진영)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그랬어요. 밀치는 과정에서 ‘입 다물어’라는 대사가 너무 걸리는 거예요. 델이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지만 여자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조율 과정을 거쳐 나온 대사가 소심하게 주눅이 들어 던지는 “살살 밀었어”다. 나이 많은 연인 스텔라(진수현·주아)나 에스더의 호칭도 이름이 아닌 ‘누나’로 바뀌었다.

“델은 리조트 최고의 가수라는 자부심도 대단한 친구예요. 코러스 얘기를 하면서도 예쁘면 그만이지 라고 가볍게 얘기하지만 정말 자기 무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거든요. ‘착각한 거 같은데 내 무대는 아무나 서는 게 아니야. 최고의 무대니까’ 식의 대사들도 그래서 만들어졌죠. 무작정 웃기기만 하기 보다는 그 캐릭터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들이라는 타당성이나 개연성을 만들어주면 금상첨화니까요. 그래야 관객들도 델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상윤은 ‘왜’라고 묻고 또 묻는다.

언제나 첫 마음으로, “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

‘오! 캐롤’의 델 모나코 정상윤.(사진제공=브릿지경제)

“옛날 생각은 늘 하는 것 같아요. 데뷔할 때의 마음은 늘 생각하죠. 첫 공연은 어떤 공연이든 설렘이…진짜 좋은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첫 공연의 첫 캐릭터로 무대에 서서 첫 관객을 맞이했을 때가 진짜 좋아요.”

그렇게 늘 처음을 생각한다는 정상윤은 최근 고민이 많아졌다. 2017년을 어떻게 지내야할까, 배우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인간 정상윤으로서 바로 설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행보를 고민 중이다.

여러 고민들을 털어놓던 정상윤은 “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라고 정리했다. 꿈에 대한 질문에도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 어떤 캐릭터로 서있을 때요. 사실 진짜 별거 없거든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고 답인 것 같아요. 그냥 배우로 정말 진심을 다해서, 늘 그랬지만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무대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그 안의 인물로 살아 숨쉬는 사람이고 싶다는 배우 정상윤이 다시 한번 되뇌는 다짐과도 같은 말이 아련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냥 무대에 있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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